SF 여행 - 1

새로운 경험, 새로운 길

경로 변경

2월 말까지 Keplr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전까지 남은 시간, 그리고 설 연휴를 활용해 실리콘 밸리를 경험해보고자 무작정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EO House, Maru SF, Rakuten, Meta, Stanford, 그리고 지인이 창업한 회사 방문 등 빡빡한 일정 속에서 아직 소화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여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짧게나마 중간 회고를 남겨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보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

가장 먼저 여장을 푼 South Bay 지역은 상당히 평화로운 곳이었다. 2월이라 비가 잦았지만, 해가 드는 날이면 따스한 햇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비가 오면 꽤나 쌀쌀하고 춥다. 다음 여행에는 2월을 피하리라 다짐해본다. 후술하겠지만 SF와 달리 긴장감이 덜하여, 훗날 내 삶의 터전을 미국으로 옮기게 된다면 SF보다는 이곳을 선호하게 될 것 같다.

비아시아 문화권에서의 경험은 처음이라 꽤나 새롭고,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긴장감이 공존하는 미묘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낯선 경험 앞에서 두렵고 어색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분되는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 기분이 참 복잡미묘했다. 막연히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환상이 깨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곳만이 가진 고유한 바이브에 매료되었다고나 할까?

새로운 길

어쨌든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다. 하지만 지름길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금 몰입(Grinding)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San Francisco

EO House

EO House를 방문해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최근 많은 한국인 창업자들이 Bay Area로 넘어와 도전을 이어가고 있고, 최근 YC Batch에서 서너 팀 정도가 한국 팀이라는 사실에서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EO Studio 또한 미국에서의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짧은 대화를 통해 느낀 점은, 단기간에 얻어지는 성취란 없다는 것이다. YC Batch에 합격한 팀들도 서너 번의 재도전은 기본이라고 하니 말이다.

Mission Street

코워킹 스페이스인 Trellis를 방문하기 위해 Mission Street 근처에서 주차장을 찾아 헤매다 겨우 차를 대고 나왔을 때,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 한 무리와 마주쳤다. 어느 정도 냄새는 각오했지만, 길 주변의 대소변 흔적들과 약물에 취한 이들의 기괴한 모습, 그리고 길거리 노숙인들이 틀어놓은 헤비메탈 음악은 나를 상당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Mission Street의 유명하다던 그래피티는 구경도 못한 채 코워킹 스페이스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기대했던 Early Stage Founder들의 치열함보다는 다소 캐주얼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무서웠다. 당시 오후 5시 반 경이었는데, 조금만 더 늦어 어두워졌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Dog Patch

그나마 샌프란시스코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곳은 Dog Patch였다. 예전에는 제철소 및 조선소가 있었던 지역이라는데, Y Combinator 건물도 꽤나 오래된 것으로 보아 공장이나 제철소, 혹은 조선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Adobe 건물 또한 멋졌고, YC 오피스 근처에는 Worldcoin을 만든 Tools For Humanity도 있었다. Mission Street와 같은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가 진 뒤에는 주의가 필요한 지역임은 분명하다.

가장 Vibe가 좋았던 Palo Alto, Sunnyvale

Stanford Univ.

스탠포드 대학은 캠퍼스의 압도적인 규모부터 놀라웠다. Palo Alto에 위치해서인지 치안도 훌륭했으며, 중세 유럽풍 건물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우아함이 있었다. 높게 뻗은 야자나무와 대비되는, 비교적 층고가 낮은 건물들이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다. 한국 대학에는 고층 건물들이 많은 점이 새삼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음식점과 카페에서 수업 자료를 만드는 교수님, 대학원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의 활기가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먼 훗날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가 그럴 능력을 갖춘다면 이곳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Sunnyvale, Mountain View

특별한 목적이 있어 방문한 것은 아니었고 주택가 구경 위주로 둘러보았다. 두 지역 간 월세 차이는 다소 있는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의 도시임은 분명했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고, 층고가 낮은 주택들이 인상적이었다. 친절한 사람들까지!

실패와 성공

실패의 연속

지나온 삶은 숱한 실패의 과정이었다. 청소년기에는 좋아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는데, 20대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고 돌이켜보면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30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

성공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1.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
  2.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

원래는 평균 수명보다 훨씬 짧게 살고 싶었으나, 요즘은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삶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기에 이 세계를 오랫동안 탐구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

흠.. 운동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군.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태도

이는 스트레스 관리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인데, 결국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인생에서 가장 큰 괴로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는 듯한데,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통제하려 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기 학대의 일종이기도 하다.

최근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시장 상황이나 실력 부족 등 여러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을.

요즘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기면 코인 노래방을 찾거나 고강도 운동을 통해 뇌를 비우려 노력 중이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꽤나 좋다.

방향 수정

지적 호기심

나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수단으로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발을 들였고, Cryptography와 Blockchain은 그 여정의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매주 새로운 기술과 개념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해커와 화가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폴 그레이엄이 에세이 “해커와 화가”에서, 위대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해커는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화가와 같다고 했던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참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다가오는 2026년이 너무나 기대되고, 30대의 남은 날들을 멋지게 불태우기 위한 연료를 착실히 비축해 두어야겠다.